빅 피쉬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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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가 개봉했었고 약 20년이 지나 2021년도에 재개봉 하였다. (심지어 2025년도에도 재개봉 했었다.) 요즘은 과거 영화들이 종종 재개봉 하기에 재개봉 자체로 그 영화의 인기 척도나 만듬새를 논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매력을 뿜어대고 있다.
이완 맥그리거의 젊은 시절 모습과 해리포터 벨라트릭스의 헬레나 본 햄 카터,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빌리 크루덥, 인셉션의 마리온 꼬띠아르 등 반가운 얼굴들의 Young 한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빅 피쉬를 이야기 해보려 한다.
진실과 거짓
이 영화의 큰 뼈대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와 그 아들의 갈등이다. 아버지는 다소 거짓이 섞인 말로 삶을 포장하는데 능숙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그런 그의 이야기는 전혀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다. 자신감 넘치고 확신에 찬 그의 언변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아들은 그런 이야기들이 싫다. 아버지는 위선자로 보이고 거짓된 이야기들은 허무맹랑 할 뿐이다.
"이제는 좀 진실을 말해달라" 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그저 안타깝고 허전하게 바라보며 부자 사이는 그렇게 갈등을 겪게 된다.
관객들 역시 아버지의 거짓된 이야기로 부터 펼쳐지는 판타지와 종종 보여지는 실제의 모습, 심지어 어떤 이야기는 캐릭터 등장 시간 순서도 꼬여 있다. 헬레나 본 햄 카터가 연기한 제니는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이 만났을 때는 꼬마 아이였는데 아들에겐 늙은 마녀라고 이야기하며 서사적 구조를 꼬아 놓는다.
눈치가 빠른 관객들은 어쩌면 영화를 보다가 상황 파악을 금새 할지도 모르겠다. 또 팀 버튼의 영화를 잘 아는 매니아라면 예측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이 영화의 큰 틀은 다름아닌 그 구라 거짓말이다. 그 거짓말은 소위 판타지가 되고 영화적인 표현들과 함께 관객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생각해보면 일상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그 지루한 일상이 지겹고 때론 화가 날 때도 있다. 그 평범함이 행복하다며 위로를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며 떠나버리고 내던져 버리려고만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에드워드 블룸의 위대한 허풍을 통해 삶을 판타지로 바꿔버리고 있다. 이 영화는 그저 판타스틱한 허풍인 셈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판타스틱한 허풍을 통해 위로를 받고 때론 용기를 얻는다. 삶은 그렇게 일어서는 것 아닐까? 마치 다 기울어진 집을 일으켜 세우는 에드워드 블룸과 거인 칼의 모습처럼.
진실은 때론 우리가 쫓으려는 그 무엇가이고 매우 숭고하고 어쩌면 우리가 꼭 도달해야 하는 목표점 같다. 하지만 때론 그 진실은 매우 재미가 없다. 그 심플함은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하여 별 의미가 없어진다. 인간에게 별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 만큼 큰 비극과 슬픔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허풍을 떠는 에드워드 블룸은 그 만의 허풍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였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아버지의 거짓말 같았던 사람들은 아들 앞에 모두 등장한다. 단, 허풍은 빼고 말이다.
거짓과 진실, 진실과 거짓은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쌍둥이 연극배우 처럼 실은 하나의 줄기에서 뻗어나오며 실상은 서로가 서로를 닮아서 서로 재연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삶은 그런 진실과 거짓을 이용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더 풍요로워지고 더 커지곤 한다.
인상적인 장면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처음 마녀를 만난 에드우드 블룸은 마녀의 눈을 보여 달라고 한다. 마녀의 눈을 보면 '죽음의 순간'을 들여다 보게 되어 다들 두려워하지만 그는 마녀의 위협에도 다음과 같이 대꾸하며 보여주길 청한다. '보여주세요. 오히려 다른 일들이 일어나도 그게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의 끝을 안다면 그 끝이 아닌 이상 우리가 두려워 할 일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역시나 빅 피쉬 하면 떠오르는 대표 장면인 프로포즈. 노란 꽃을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꽃밭을 만들어주는 이완 맥그리거 아니 에드워드 블룸. 이 장면의 판타지이자 모든 남성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같은 장면이다. 심지어 아내는 과거 이미 다른 남자의 약혼녀였다. 하지만 이 프로포즈와 에드워드의 공격적인 대시는 결국 손가락에서 약혼 반지를 빼내고야 만다.
지미와 만난 윌 블룸은 그녀에게 불륜 이었냐며 사실을 따져 묻는다. 하지만 실상 아버지는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럼 대체 왜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이 장면은 사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보니 인상적 이었다.
과거엔 몰랐다. 날 이렇게 만들었던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따져 물으면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거엔 과거대로 확고한 이유가 있었고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다. 여전히 과거로 돌아가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이다.
아버지를 강가로 놔주는 아들.
빅 피쉬가 강가로 풀려난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아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움과 감동을 느낀다. 어느덧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건지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저 높은 고층 건물들을 바라보며 '내 집은 어디인가?' 란 질문들을 하며 살거나 주식창을 들여다보며 '오늘도 내겐 행운이 따르질 않는구나' 라며 허탈해하는 인생보단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인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나의 해석
팀 버튼의 영화는 상처받고 외로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이다. 마치 퀸의 We are the champion 처럼. 단지 그 노래는 강렬한 위로와 '니가 최고야!' 라고 소리치며 응원한다면 팀 버튼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저변에 깔린 그 아픈 상처를 조용히 위로해 준다.
어린시절의 우린 각자 미래에 대한 판타지를 그리며 살았다. 10대를 넘어 20대. 꿈을 꾸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꿈꾸며 산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 진실 앞에 우리의 판타지는 모두 사라지고 기울어진 집처럼 삶은 계속 고꾸라져 가기만 한다.
영화는 그런 판타지를 통해 사람들을 자꾸만 위로해준다. 이 영화를 시간이 지나서도 보면서 빠져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진정 어린 그런 위로가 영화내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 대체 영화에서의 판타지는 뭘까?
거인, 사실 거인은 그저 키가 큰 친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거인을 동네에 나타난 괴물로 묘사하고 에드워드가 그를 설득해 마을을 떠나며 마을의 평화를 찾는 걸로 보여준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영웅담인가? 허무맹랑하지만 참신하며 유쾌하다. 판타지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는 내내 참신하고 유쾌하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가진 차이점 이라면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 이해 처럼 우리도, 우리 삶도 이해 받고 위로 받게 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우리 모두가 두려워 할 죽음도 이 영화는 정말정말 참신하면서도 놀랍게 풀어준다. 영화만이 가진 판타지를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2시간을 위로 받으며 이 영화 상영을 마치게 된다.
사실 이 영화가 유독 따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위손, 비틀주스, 슬리피 할로우처럼 팀 버튼의 전작들은 대부분 어둡고 기이한 고딕 스타일이 특징이다. 그러나 빅 피쉬는 그 필모그래피에서 눈에 띄게 결이 다르다. 사실 팀 버튼은 이 영화를 만들기 직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이어 잃었다. 부모님의 죽음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다. 그 슬픔을 안고 만든 영화여서 인지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감성이 있다. 밝고 따뜻하면서도 조용히 건네는 위로.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라는 테마가 어쩌면 감독 자신이 살아서는 다하지 못한 화해를 영화 속에서 이룬 것 인지도...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팀 버튼 특유의 화려하고 기묘한 미장센을 유지하면서도, 그 어떤 작품보다 진심 어린 온기가 느껴진다.
